2012/01/30 01:35

근황 ★ 일상日常 ★

1.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해마다 제 나이를 강하게 인식하는 해가 있고 그렇지 않은 해가 있는데, 올해는 전자 쪽이다.
2012년이라는 것도 꽤 익숙하다. 2011년을 벌써 쉽게 '작년' 으로 넘겼다. 꽤 빠른 적응이다.
아마도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내 주변 환경을 보건대, 스물여섯은 아직 '애기' 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스물여섯? 아직 좋을 때구만~" 하는 반응들 사이에서, 나도 '그렇다면 스물여섯쯤이야 뭐' 하고 내 나이를 쿨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제 2가 3으로 꺾여서 막 '계란 한 판' 이 된 사람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2.

올해는 나만 운수대통이라고 했다, 인터넷 사주가.

작년에는 대신증권에서 본 것 같고 올해는 신한생명에서 봤는데,
엄마가 하도 사주 사주 하기에 그냥 별 생각 없이 봐 줬다. 내 건 꽤 괜찮았기 때문에 가족들 것도 괜찮을 줄 알고.
그런데 웬걸, 이건 가족들 모두 올해 조심하세요, 자중하세요, 인 거다.
돈 문제 NO, 일 벌리는 것 NO, 시험운도 NO......
그래서 연초에 이사를 할까 인테리어 공사를 다시 할까 하고 고민하던 것도 슬슬 흐지부지되어가고 있다.

또 재미있는 것이,
작년에 윷놀이가 꽤 재미있어서 올해도 모여서 윷놀이를 했다.
그런데 나는 감기로 골골대다가 나왔는데, 아빠랑 동생이 둘 다 꼴찌를 해서 두 판 다 돈을 잃었다고 했다.
에이씨 운수대통인 내가 나서야지.
그래서 정말 내가 나서서 윷을 놀았는데, 초반에 계속 말이 잡혀서 진도가 안 나가던 것이 한 번 삘을 받으니 윷, 모, 모, 말 잡고 다시, 또 말 잡고...... 해서 일등하고 내가 판돈 확 쓸어버렸네?
그 뒤에 엄마가 나서서 했지만 별 재미 못 보고, 결국에는 내가 판돈 딴 걸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었다는 얘기.
나중에 우리 식구끼리만 남아서 날 보며 말하기를,
되는 애는 뭘 해도 되나 봐.

스타트는 나름, 괜찮게 끊었는데...... 어찌될지는 나도 모르지.









3.

자칭타칭 연애코치라는 김태훈의 <내일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
그냥 재미있게 읽을 만한데, 그래도 중간중간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몇몇 문장들이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팁들을 잘 건지면 괜찮은 책.

-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 변할 것이라 믿는 지루한 기간 동안 사랑이 변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높게 보면 비극이 옵니다'. 독일의 작가 막스 밀러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상대를 평생 꿈꿨던 이상형이나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완벽한 인간으로 변화시켜 버리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시들어간다. 두 발을 땅에다 대고 사는 인간 중에 당신의 기대를 100퍼센트 만족시킬 그런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기대치를 낮게 잡을수록 실망하지 않는다.

- 남성은 냉정해졌을 때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여자는 흥분했을 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 남녀가 처음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도, 그 애정 표현의 수위는 남성에게 먼저 높게 나타나고, 여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에서 머문다. 그러나 여성이 비로소 마음을 완전히 열고 애정을 표현할 때쯤이면, 남성들의 열정은 조금 가라앉는다. 이런 부조화는 서로의 의사교환의 시간차로 나타나고 결국 여성들은 남성이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최문희의 <난설헌>.
원래 이런 베스트셀러 잘 안 읽는 편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내가 찾아다녔던 책들이 모두 대출중이라 어쩔 수 없이 빌려왔다.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표현이 무척이나 고아했다. 하지만 문장의 고아함과 예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힘을 준 탓인지 초반부 문장은 잘 읽히지 않았다. 
특히 초반부에 허초희의 혼례를 준비하는 과정에 지나치게 많은 '불길한 징조' 들을 내보이고 있어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요소는 강렬한 것 한두 개면 충분하다.)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이 되었다. 시어머니의 존재는 너무 전형적이어서 또한 억지스럽지만, 차라리 남편 김성립의 미묘한 심리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나무랄 데 없는 신붓감이나 오히려 그러하여 더욱 정이 없어보이는 허초희에게 시기하면서도, 퉁명스럽게나마 언뜻언뜻 부부로서의 정을 내보이는 김성립.
역사소설이 대개 그러하듯 예견된 불행이어서 소설적 재미는 덜했지만, 허초희의 인간적이면서도 인간적이지 않은 고아한 면모가 드러난, 시간 날 때 읽어보면 좋을 소설.




전경린의 <유리로 만든 배>.
그것이 정말 <유리로 만든 배>인지, 아니면 이전의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타고 떠도네>인진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이전에 읽은 적이 있다...... 블로그 뒤져보면 나올 것 같은 기분...... 그런데 그걸 잊고 또다시 빌려와서 읽었다. 요즘 기억력이 깜빡깜빡하다. 에휴.
스물다섯 살 주인공 은령. 그녀는 말한다. 스물다섯쯤 되면 선택의 순간이 온다고. 그저 남들처럼 '또다른 양부' 에게 시집을 가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며 사는 삶, 혹은 그런 것들을 완전히 포기하고 사회에 투신해 전력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삶. 그녀에게도 선택의 고비가 왔다. 사귀어 왔던 남자친구가 청혼을 한 것. 그러나 뜻밖에도, 남자친구 부모가 은령의 이력을 두고 거센 반대를 한다. 은령의 어머니가 나이든 남자와 재혼하여 갓난애를 낳고 사는 것을 트집잡은 것이다. 은령은 결국 어머니와 양부, 이붓동생을 떠나 어느 항구도시에 라디오 말단 작가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만난 두 남자, 유경과 이진.
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 중 제대로 된 남자는 거의 없지만(친부도 양부로 치부하는 여자의 시각이니 특히나 그러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특히나 유경과 이진은 재미있는 존재다. 유경은 여자처럼 섬세한 외모를 갖고 있고, 이진은 희미한 외모지만 단호한 옆얼굴을 지녔다. 유경은 시를 쓰는 돈 없는 남자고 이진은 시와는 전혀 무관한 돈 많은 사업가다. 유경은 스물일곱 어린 청년이고 이진은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의 나이다. 유경은 마른 몸을 지녔지만 이진은 비둔한 몸을 지녔다. 결정적으로 유경은 은령과 정신적으로 교감하고 이진은 은령과 육체적으로 탐닉한다. 그리고 은령은, 그 둘 중 어느 것도 놓을 수 없어하고.
일종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를 완전히 맡기고 의지할 수 없는 완벽한 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는.
이진의 육체에 유경의 정신을 가진 남성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은령은 둘 모두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용납되지 않았다. 유경은 자신을 죽여 은령에게 이별을 고했고 이진은 은령을 매춘부 취급해 모욕으로 이별을 고했다. 그 어디에도 은령이 의지할 곳은 없었던 것이다. 끝내는 친모와 양부까지 교통사고로 급사해 버리고 만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의외로, 금세라도 파멸할 것 같았던 은령은 친모와 양부의 하나 남은 의붓동생을 거두어 키운다. 아무렇지도 않게.
스물다섯, 선택의 순간을 넘기고, 그 어떤 선택을 하지 않고서도, 은령은 잘 살아나가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소설의 선택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십 년이 훨씬 넘은 지금은 몇 살쯤일까. 서른 즈음이 아닐까. 어쩌면 서른둘? 쯤일 수도 있다. 그래도 서른둘까지는 애교로 넘어가는 것 같지만, 서른셋이 되면 급격히 노처녀, 라는 느낌이 온다.
나는 스물여섯, 아직 그 무엇도 놓지 못하겠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
작년 이맘때쯤,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를 읽다가 채 못 읽었다. 종각인가 시청인가, 그 근처의 낯선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날실과 씨실처럼 꼬리를 엮어가는 차선을 눈으로 좇으면서.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행복하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한 묘한 시간들이었다. 행복과 불안이 뒤범벅되어 채 책장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었지.

다시 빌리러 간 <바람이 분다, 가라>는 대출중이었고, 대신 <희랍어 시간>이 있었다.
한강의 책들은 묘한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문장들이지만 그 배경에는 묘한 우수가 드리워져 있다. 고요한 슬픔. 그 시적이기도 한 문장들을 곱씹으면 때로는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 가라>와, 이번의 <희랍어 시간>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한강의 문장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인지. 둘 다일 거라고 생각한다.
<희랍어 시간>은 말을 잃은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가 희랍어 시간으로 교감 아닌 교감을 하는 이야기이다. 유난히 언어에 민감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던 여자는 외적으로는 이혼 후 양육권을 빼앗기고 모친을 잃은 슬픔으로 말문을 닫아버리게 된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그것은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며, 문장과 음성 간의 그 괴리감을 끝내 견디지 못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여자에게는 단어가 단어가 아니며 문장이 문장이 아니다. 흡사 '게슈탈트 붕괴현상' 을 연상케 한다. 이전에도 그런 적 있던 여자는 이전, 프랑스 어를 배우며 그 침묵을 깨뜨렸던 것을 상기하여 이번에는 더 낯선 언어인 희랍어를 배우며 침묵을 깨뜨려 보고자 한다.
여자가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말문을 닫은 것이라면 남자는 유전병에 의해 눈을 잃어가는 경우다. 15세 때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독일지사 부임으로 함께 독일로 넘어가 30세까지를 살다 귀국한 남자. 아버지 역시 유전병에 의해 시력을 잃고 죽음을 맞이했고, 남자 역시도 예정된 시한부 시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남자와 친분이 있는 대상들은 모두 결핍을 지닌 존재들이다. 귀머거리 소녀와의 풋사랑, 시한부 삶을 사는 소년과의 우정. 그리고, 요즘 관심이 가는 침묵의 여인.
그들은 희랍어를 매개로 모여 있다.
'이미 죽어버린 언어', 희랍어를 중심으로.

- 가늘게 떨리는 획과 점들이 두 사람의 살갗을 동시에 그었다가 사라진다. 소리가 없고 보이지 않는다. 입술도 눈도 없다. 떨림도, 따뜻함도 곧 사라진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는 대화한다.
소리도 빛도 아닌, 촉감으로.

이전에는 한강의 문장들이 --------- 이렇게 중간중간 끊어지긴 했지만 연속선상을 그린다고 느꼈는데, 이번 한강의 문장들은 - - - - - 혹은 아예 . . . . . 이런 느낌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공백이 커진 느낌이다. 그 공백을 읽어내기가 좀 힘들었다. 일단은 내 정신상태가 평화로이 책을 읽을 만큼 평정상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작년의 나는 행복과 불안이 뒤범벅되었음에도 나 자신은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면,
올해의 나는 그 근간부터 마구 흔들리는 터라, 참 힘들다.

내 그루터기가 좀 단단해지고 질척한 마음이 조금 굳으면, 조금 후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4.

누군가와 얽히면서, 나를 꽉 붙잡고 중심과 평정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태까지의 삶은 진정 누군가와 얽힌 삶이었는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 인생 헛 살았다, 이 헛똑똑아.
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